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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후기

Movie) 택시 운전사: 잔인했던 현실 속 영웅 이야기

by 김미재 2020.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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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영화 포스팅은 1980년 5월, 광주행 택시를 담은 영화 <택시 운전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송강호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광주를 배경으로 눈물이 끊이지 않았던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심심찮게 보이는 택시를 볼 때마다 영화의 감동은 찌르르 올라오는 듯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택시 운전사를 두고 하는 말 같아 많은 분들이 보시길 원하는 마음에 포스팅을 해봅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광주? 돈 워리! 아임 베스트 드라이버!"

 

서울의 평범한 한 아이의 아버지, 평범한 택시 운전사 만섭은 평범하지 않은 한 외국인을 손님으로 태우게 된다. "렛츠 고 광주!" , 1980년 당시 광주행 10만 원 택시비는 만섭이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대를 잡게 만들었고 만섭과 특별한 외국인 손님은 광주로 향하게 된다. 험난한 여정을 거쳐 도착한 광주, 만섭과 독일 리포터 피터의 눈앞에 펼쳐진 광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만섭이 광주를 빠져나와 순천에서 딸의 구두를 사는 장면을 본다면 광주를 외면한 채 도망친 만섭을 아무도 욕하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만섭은 서울로 가는 길, 택시를 멈추고 오열하다 유턴을 한다. 이 장면에서 나는 눈물이 팍하고 터졌다. 정말 억지 감동이 아닌 그 장면이 주는 감동과 슬픔, 그리고 고스란히 전해오는 그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외면한다면 편하게 살 수 있었다. 책임져야 할 어린 딸이 서울에 있고 돌아가 상구 엄마에게 사글세 10만 원을 내고 떵떵거릴 수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다. 외면하면 편하다. 만섭은 몰랐을까? 아니, 절대. 알면서 갔다. 왜? 양심을 따라서. 만섭은 항상 입 버릇처럼 말했다. "데모하려고 대학 갔어? 대학생이 공부나 할 것이지." 데모 현장을 피해 가던 서울 택시, 나는 빨갱이가 아니라며 빌던 만섭은 유턴을 하고 광주에 돌아온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광주 사람들과 같이 나서 총알을 막아서기도 했고 눈물도 흘렸다. 외면하지 않고 직면한 만섭, 편한 길을 가다가 다시 돌아온 만섭은 멍청한 것일까? 아니, 아마 그 누구보다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주연들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일본에서 온 독일 기자 피터

"노 광주, 노 머니"

 

기자는 위험한 곳을 찾아가는 직업이라며 광주가 심상치 않다는 소리를 듣고 광주행을 결심하는 피터는 프라이드가 높고 열정적인 기자였다. 위험하다며 자신의 손을 끄는 만섭에 끌려가면서도 카메라는 현장을 향해있었다. 하지만 만섭이 돌아온 후 피터는 병원 바닥에 앉아 카메라에 손을 놓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 감정은 자신을 위해 누군가 희생되었다는 슬픔 그리고 이 취재를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라고 생각한다. 만섭은 피터의 손에 카메라를 쥐여주고 둘은 현장으로 향한다. 피터는 카메라 속으로 택시들이 총알을 막는 현장을 보면서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이 상황을 꼭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자고. 이 영화 마지막에 영화 속 실존 인물인 힌츠페터(피터)의 영상이 나오는데 친구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관객이 같이 울게 했다. 힌츠페터는 생전에 가족들에게 “죽어서 광주 망월동에 묻히고 싶다”라고 했다. 실제로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에 힌츠페터의 유품이 안치됐다. 정말 열정으로 광주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한 진정한 언론인이신 힌츠페터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갓김치를 사랑하는 광주 이장

"여긴 걱정 말고 어서 서울로 올라가유"

 

나의 눈물을 쏙 뺀 1등 공신이다. 광주 이장은 광주를 의미하는 것 같다. 모르는 타지 사람을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이해해주며 눈 감아 줄 수 있고 광주 이웃들의 죽음에 누구보다 먼저 목숨 걸고 나설 줄 알며 대신 울어주는 모습은 정말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유해진의 연기력은 정말 최고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의 감정이 나에게 고스란히 넘어올까.. 천재가 아닐까? 아침 일찍 서울로 가기 위해 나서는 만섭은 혹시나 누가 볼까, 따라올까 몇 번을 뒤돌아 본다. 택시에 있는 곳에서 만난 광주 이장은 웃으며 이해해준다. 이 장면에서 모두가 울지 않았을까? 또한 마지막에 만섭에게 서울로 가는 길을 터주면서 이후 후진하는 모습은 이 배역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차가 부딪히는 장면을 소리로만 표현했는데 이때 연출의 세심함을 느꼈다. 갓김치를 사랑하고 광주를 사랑하는 이 역할은 나의 영화 배역 부문 눈물 도둑상으로 뽑겠다.

 

 

노래는 못하지만 영어는 잘하는 광주 대학생, 구재식

"공부하려고 대학 간 거 아닌디, 대학가요제 나가려고 대학 간건디"

 

데모하려고 대학 갔냐는 말에 자신은 대학가요제 나가려고 대학 갔다며 웃던 이 청년의 죽음이 그렇게 외로웠을 줄 누가 알았겠나. 영화 속 자신은 먹었다며 주먹밥을 한가득 나눠주던, 인터뷰할 줄 알았다면 좀 깔끔하게 나왔을걸 하며 웃던,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눈길을 주고받던 광주 청년들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슬펐고 스크린 속 참혹한 장면에 더더욱 슬펐고 스크린에 펼쳐진 장면보다 현실이 더 잔인하다는 생각에 나는 너무 슬퍼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사실 꺼이꺼이 울었다.

 

 

 

 

 

 

 

- 왜 초록색 택시일까?

 

보통 택시의 색을 생각하면 노란색이 떠오른다. 하지만 영화 속 택시는 모두 초록색이다. 왜 초록색 택시일까? 이것은 감독의 초이스였다고 한다. 극중 중요한 요소인 택시의 색을 정할 때 감독은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 빨간색과 보색인 초록색을 선택했고 이 뜻은 피와 반대된다는 뜻을 지닌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왜 마지막에 군인은 못 본 척 보내줬을까?

 

마지막에 나온 박 중사는 택시가 위에서 잡으라던 서울 택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택시를 그냥 보내주게 된다. 왜 박 중사는 알고도 보내줬을까? 힌츠페터 기자는 "당시에 사람들이 모른 척해 주고, 도와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분들이 없었으면 이 필름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게 김사복이나 광주 시민뿐만이 아니고…"라고 이야기했고 감독은 그런 취지에서 그 장면을 표현했다고 한다.